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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중독

그와 그녀의 이야기속에는 두사람만 있다. 시작을 알리듯,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다 그에게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석연치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라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없다는 점이 걸렸다랄까. 그는 그녀를 탐하는 순간에도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를 우월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도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은 책을 읽었다고, 그것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22쪽) 그는 강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취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잘 나가는 파티쉐였다. 자신이 아직 서른셋이고 어려서 40쯤되면 자리가 바로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순간에만 나이를 신경썼다. 그때만 그녀가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가 곧 마흔이라며 부러워했다. 딱 그 순간만이였다. 나이 많은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그때에 그는 또 다시 어떤 이유를 될지 모르겠다. 다행히 그때까지 두 사람의 사이는 이어지지 않겠다. 그는 그녀에게 그다지 궁금한 것이 없으면서도 시덥지 않은 것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로지 육체적 관계만 있어 보였다. 그는 그외에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최대한 기억하고 싶지 않고 지워버려야 할 부분이라서 그랬을까. 그런 그를 그녀는 따스하게 감싸안아준다. 그가 원하는 말을 해준다.  그녀는 고등학교때 문예반 선생님과 사귀었다. 그녀의 관계는 그때 시작됨과 동시에 버려졌다. 그것이 맞을터였다. 문예부 선생님은 작별을 고하지도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그때 이후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듯 보였다. 그러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도 그후로도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으려 무뎐히 노력하고 있어 보였다.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믿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그의 혀 감촉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 끝날지 몰라도 더이상의 질척임도 남지 않을것이다. 그는 그대로 떠나버리면 그만일 것이고 그녀는 과거의 이별처럼 한동안 이명현상에 시달릴 것이다. 과거 두번째 남자덕분에 두번의 임심을 하고 두번의 낙태를 했다.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말했다. 그후로 그녀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는 지인덕분에 딸랑이 열쇠로 유학생활에서 온전하지 않았지만 미친년처럼 보내지는 않은것 같다. 그 열쇠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줄줄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버틸수 있었다.   두 사람의 첫만남은 뒤라스 묘지에서였다. 이 세상의 끝은 죽음일 것이다. 시작을 알리기도 전에 두 사람의 관계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때문에 끌렸는가는 모르겠다. 그저 그녀는 텅빈 마음이 허전했을 것이다.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든다. 첫 입은 너무 달콤하다. 달콤함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그녀는 사랑에 헤어나오지 못해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기분이다.   <이 책은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함정임 문학의 새로운 서사적 실험을 시도한 중편소설 장미는 말라갈수록 더 애틋하죠. 말라가는 냄새, 말라가는 색깔……. 치명적인, 너무도 치명적인 사랑의 사소함한국 현대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선보이고자 소설향 시리즈 중에서 5편을 골라 특별판으로 출간하였다. [소설향 특별판]으로 출간된 아주 사소한 중독 은 함정임 작가의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줄곧 생의 상처와 죽음의 상흔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탐색하고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한 글쓰기의 도정을 보여왔던 작가 함정임이, 생의 가장 원초적 감각인 ‘혀’를 매개로 사소한 일상에 잠복해 있는 사랑의 치명적인 독성을 가벼운 포르노그라피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형식과 스타일의 측면에서 함정임 문학의 새로운 서사적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나아가 사랑의 상실과 고독, 혹은 소통 부재의 소외감이 진정 당신에게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지 묻는다. 주인공 ‘그녀’는 특급 호텔의 케이크 디자이너로 연하의 유부남과 불륜의 사랑에 빠져 있다. 혀를 통한 감각만을 맹신하는 ‘그녀’에게 먹고 말하는 데 사용되는 혀는 자신의 감각적 · 감정적 대상을 골라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작가는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면서 관계의 소소한 단면에 빠져들어 중독되는 순서를 묘사하여, 사소함의 중독성에 숨겨진 상처의 위험으로부터 현대인들이 안전한지를 묻는다. ‘그녀’와 연하의 유부남 ‘그’의 사이에서 작가가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의 부도덕성이 아니라, 교감하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단절을 체험하고 마는 두 사람의 공허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현대성의 비극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비록 인공낙원이며 공중 정원의 세계일지라도, 사랑의 유한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픔이고 상처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