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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내 인생

  구경미의 『파란만장 내 인생』을 읽으며 중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돌아가지 않겠지만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북한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올 정도라는 대한민국 중2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파란만장 내 인생』의 주인공 한동이는 사랑스럽다. 그 나이를 지나온 나는 한동이가 부러울 정도다. 사춘기의 정점을 마녀 할머니의 독 탄 떡볶이 에서 귀여운 할머니와 살아가는 한동이. 이름이 한동이라서 별명이 양동이, 한 양동이로 불리는 동이.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긴 했으나 곧 혼자 지내는 날들로 돌아갔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빈 방에 불과 텔레비전을 켰다.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반찬들을 꺼내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들었다. 아침이면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부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멍하니 수업을 듣다 돌아왔다. 명절이 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돌려 보며 누워 지냈다. 골목을 걸어가면 쏟아지는 대화들, 불빛들. 그 세계는 나와 멀리 있었다.  한동이는 새엄마를 피해 할머니와 살고 있다. 수민이와 아영이, 친구들의 아지트로서 독 탄 떡볶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메뉴는 단 세 가지. 불난 집에 부채질 , 내게 강 같은 평화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마지막 메뉴는 복불복이다. 치즈나 만두, 무엇이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동이는 그곳에서 할머니를 도와주기도 하고 친구들과 학교 끝나고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공부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아영이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할머니의 지시가 떨어진다. 동이는 아영이와 대화를 통해 동네 오지라퍼 아줌마들의 입을 닫게 한다. 그러다 아영이네 미용실 문도 닫게 만들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도움으로 미용실을 옮기는데 성공한다.   동이를 이루는 가족은 두 갈래로 나뉜다. 동이가 속한 원래의 가족과 큰아버지 가족. 두 가족의 문제를 온전히 겪어야 하는 동이에게 가족이란 불난 집에 부채질 정도의 화끈함을 선사해주는 존재들이다. 아프고 배고프고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힘든 중2, 동이는 혼자가 아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새엄마를 맞이한 아빠와 어색하지만 동주 언니의 가출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아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집중포화를 맞지만 동이는 혼자가 아니다.  집은 북적거리지도 환하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고 고요함이 익숙해졌다. 누가 보고 있어도 슬쩍 치우고 싶었는데 저절로 사라진 가족들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소설이라면 성장 소설이라면 그들이 돌아오고 빈 방에 불이 켜지겠지만 현실의 방은 여전히 깜깜하다. 소설이라서 소설이기 때문에 독 탄 떡볶이 대신 독 탄 밥을 함께 먹는 동이와 친구들의 앞날이 꽃길일 것으로 응원한다. 

‘함께’여서 괜찮은 열다섯 인생 동이, 수민, 아영……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열다섯 시기, 이들은 ‘함께’이기에 즐겁고 더욱 성장해간다. 이들의 인생은 모르는 것투성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부딪쳐가며 세상을 향해 서툰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아빠에게 엄마는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사람 이었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그 말은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새엄마에게도 유효하다. ‘동이’는 ‘사랑’이 무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또래 친구들이 아이돌 때문에 치고 박고 싸우다가 급화해하기도 하는 모습에 아빠의 사랑을 곱씹어본다. 새엄마가 ‘그냥’ 싫은 것은 자신마저 엄마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엄마를 굴러온 돌 이라고 스스럼없이 내뱉는 할머니의 말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새엄마에게도 자식이 있었으면 아빠도 그 아이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까,라고 ‘동이’는 입장을 바꿔 고민해보기도 한다. 사촌언니 ‘동주’의 가출로 인해 ‘동이’ 또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지만, 절친 ‘수민’ ‘아영’과 함께 언니를 찾을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수민’의 다이어트 때문에 세 친구 모두 수민이 엄마에게 빚을 지게 되었지만, 어른들에게 손 벌리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렇듯 열다섯 꽃 같은 나이에도 숱한 갈등과 문제 상황은 결코 끊이지 않지만, 그들은 ‘마녀 할머니의 독 탄 밥’도 함께 먹어주는, 모름지기 친구이기에 ‘파란만장한’ 인생도 이겨낼 수 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해는,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냐. 그럼? 그냥…… 하는 거지. ‘동이’와 ‘수민’의 대화가 보여주듯,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이해’ 아닐까. 어른들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 공감과 신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비교와 경쟁, 피상적인 관계가 난무하는 팍팍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건강한 기운과 에너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나 한동이, 도대체 사랑을 모르겠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우리는 모두 잠재적 문제아?
절교와 친교의 패러다임
난 아니야
좀 즐거우면 안 돼?
(배)고프니까 청춘이다
노동과 노예 사이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