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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세상에 나온 건 지난해이다. 책 서두에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암시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서로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처음에는 모든 게 맞지 않았다. ‘코드가 참 다른 사람들이어서 공동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고. 1년이었던 출판 계획이 4년까지 늘어진 이유를 현경은 설명했다. 대강 짐작컨대 수진은 내 또래일 듯했다. 그러나 앳된 얼굴에선 나이가 읽히지 않았다. 그녀는 현경을 전사의 에너지를 지닌 거 같다 하였는데, 이는 내게도 동일했다. 세상엔 참으로 많은 제약들이 존재한다. 여자라서 해야 할 것들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들.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그저 나와 동떨어진 무언가였던 것들이 점점 더 내 삶에 스며들었다. 직접적인 공격이 가해졌을 수도 있을 테지만, 대다수는 숱한 사회화 과정에서 내 스스로 습득했다. 지금 난 누구보다도 소심하고 세상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편이다. 남에게 내가 어찌 보일까를 고민하다 보면 적절하다 일컬어지는 시기를 놓치고야 만다. 모든 여성이 나와 같지는 않을지라도 수진 또한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수진은 나와는 또 달랐다. 일찌감치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에 눈 떴다. 어쩌면 그건 분노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내 경우엔 분노를 속으로 삭히고는 했는데 그녀는 전선에 나섰다. 결과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성과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적잖은 사람들이 이를 실패로 여겼다. 성공 혹은 실패로 정의하지 않을지라도 계속되는 싸움으로부터 지치지 않기란 어렵다. 우울이 찾아왔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막연히 분노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든 에너지가 파괴를 위한 무언가로 투여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세상을 부정하는 힘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자신마저도 부정하기 시작한다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현경은 투사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했다. 수진은 현경의 모습으로부터 샘솟는 삶의 에너지를 발견했다. 현경이 머무는 공간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는데, 이는 기간이 짧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떠날 것인데 굳이 공을 들여 꽃을 심어 가꾸는 이유가 무얼까. 잠시 한국에 들어와 머문 공간은 한 때 도살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죽음의 기운이 서린 곳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이 조금은 무모해 보였다. 사람도 사물도 애정을 쏟으면 달라지는 법이다. 돌봄이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발길 또한 이어지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한 때 사랑 받았음을 다시 혼자가 된 집은 분명 기억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기억이 한 겹 한 겹 쌓이면서 세상은 달라지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약육강식을 자연의 질서로 여긴다. 초식동물이 식물을 뜯어 먹고, 맹수는 그런 초식동물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 누군가의 삶을 위해 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현실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사바나에서 직접 그 장면을 목도하면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 같다. 수진 또한 그러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음에도 현지인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장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차를 몰았다.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았다. 이 또한 삶의 법칙이다. 외면하고픈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응시한 세상은 그러했다. 잔인하다는 건 인간의 감정이었고, 동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있을 따름이었다. 글을 읽으며 순간 나는 우리 인간이 오히려 더 폭력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경쟁을 강요했다. 그것은 하나의 신앙처럼 우리 내면에 자리 잡아 측은지심마저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대다수는 결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아니 할 승자가 되고자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야말로 폭력이 아닐까. 그릇된 질서는 거부하는 게 상책이다. 아무도 그와 같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게임은 성립하기 힘들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교육을 동원하고 자신의 욕망마저 뒤틀어가면서 오늘날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고 있음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판단은 쉽지가 않다. 서울, 뉴옥, 킬리만자로 그리고 다시 서울.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장소가 바뀌었고 두 인물 또한 알게 모르게 상대와 걸음을 맞추었다. 더딘 듯하나 앞으로 나아가는, 더딘 듯함에도 분명 그 걸음은 아름다웠다. 함께 걷는 걸음에는 스승이나 제자의 구분이 필요치 않았다. 

평화와 살림, 영성부터 옷, 섹스, 먹을거리까지 60대 현경과 30대 수진이 나눈 4년간의 깊은 대화이 책은 60대 여성 멘토 ‘현경’과 30대의 젊은 여성 ‘김수진’이 4년에 걸쳐 나눈 세대 간 대화를 김수진이 정리한 책이다. 아픈 다리로 남들보다 세 배나 더 걸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한 뒤 순진한 걸음 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김수진이, 미래에서 온 편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여성·환경·평화 운동으로 유명한 유니언 신학대 교수 현경과 4년 넘게 한국, 미국, 아프리카 등지를 함께하며 여러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와 살림, 영성靈性, 여성성 같은 의식과 가치관의 문제부터 옷, 섹스, 먹을거리 등 자기를 돌보고 표현하는 일상의 문제까지, 수진의 질문에 대한 현경의 대답과 현경이 삶으로 몸소 보여주는 모습은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젊은 여성들이 가슴 깊이 듣고 새길 만한 지혜와 통찰로 가득하다. 특히 아름다움과 당당함, 자기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전해줄 것이다.

현경의 여는 글: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서울 6
김수진의 여는 글: 검은 거울이라는 사람을 여행하다 24

운명

첫 만남 34 / 다른 두 사람의 닮은 운명 39 /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50
나의 길을 간다는 것 57 / 졌지만 이긴 싸움, 강정 평화 대행진 65 / 평화가 있는 산책 72
조각보 91 / 살림이스트의 마법 101

선택

뉴욕의 현경당 116 / 다른 종교, 같은 마음?고통에 대하여 125 / 옷은 ‘도道’다 138
진실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일 147 / 분노의 북소리?상가 토크 157
먹을거리 생태학 167 / 뉴욕의 검은 거울 176 / 삶을 선택하다 187

귀향

지금 당장 아프리카로 198 / 웰컴 투 사바나 208 / 나답게, 생생하게 220
매혹하는 힘 231 / 우주 최고의 놀이 243 / 어머니의 땅 258 / 그냥 나예요 271